도쿄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역사 도시를 찾다가 가마쿠라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대불 하나 보고 오는 관광지쯤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1185년부터 1333년까지 148년간 일본의 실질적인 수도였던 곳이더군요. 막부(幕府), 즉 무사 정권이 최초로 뿌리를 내린 도시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이 도시가 왜 이토록 사찰과 신사로 가득한지 이해가 됐습니다.

삼면이 산으로 막힌 도시가 수도였다는 것
일본 여행을 계획할 때 교토나 나라를 먼저 떠올리는 분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가마쿠라의 역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무게가 교토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가마쿠라는 북쪽, 동쪽, 서쪽이 모두 구릉으로 둘러싸이고 남쪽은 사가미 만(相模湾)으로 열려 있는 지형입니다. 쉽게 말해 천연 요새입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가 1180년 이곳을 근거지로 삼은 것도 바로 이 지형 덕분이었습니다. 좁은 인공 통로 일곱 개, 이른바 '가마쿠라의 7개 입구(鎌倉七口)'를 장악하면 외부 병력이 쉽게 침입하기 어려운 구조였으니까요.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란 일본 역사상 최초의 무사 정권, 즉 군사 정부를 의미합니다. 쇼군(将軍)이라는 칭호를 받은 요리토모가 교토의 천황으로부터 실질적 통치권을 가져와 무사 계층이 처음으로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 가마쿠라 시대입니다. 세계 도시 역사 연구소(출처: IROWS, UC Riverside)의 추정에 따르면 1250년 당시 가마쿠라의 인구는 약 20만 명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도시는 1333년 단 하루 만에 무너집니다.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의 군대가 썰물을 이용해 이나무라가사키(稲村ヶ崎) 곶을 우회하며 시내로 진입했고, 마지막 호조 가문(北条氏) 사무라이 약 900명이 가문 사찰 도쇼지(東勝寺)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빈 공터인데 거기 서 있으면 묘하게 등골이 서늘하다고 합니다.
- 가마쿠라 막부 존속 기간: 1185년(또는 1192년)~1333년, 약 140여 년
- 1250년 추정 인구 약 20만 명, 당시 세계 4위 규모의 도시
- 삼면이 구릉, 남면이 바다인 천연 요새 지형
- 1333년 함락 당시 6,000명 이상이 하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기록

대불 하나만 보고 왔다면 반도 못 본 것
가마쿠라 여행 후기를 검색하면 대부분 대불(大仏)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조사하면서 '이게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걸 빠르게 깨달았습니다.
고토쿠인(高徳院)의 아미타불 동상은 높이 약 13.35미터의 청동 좌상입니다. 아미타불(阿弥陀仏)이란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린다는 불교의 부처로, 중생의 구원을 서원한 존재입니다. 15세기 쓰나미로 대불을 감싸던 목조 건물이 통째로 쓸려나갔는데, 동상 자체는 살아남아 지금까지 야외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직접 앞에 서서 올려다보면 크기도 크기지만, 주변 산과 맞닿은 하늘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딘가 마음을 내려앉게 하는 느낌입니다.
대불에서 시선을 돌리면 도시 전체가 사찰과 신사의 집합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쓰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幡宮)는 가마쿠라의 상징이자 도시 구조 자체의 기준점입니다. 사가미 만에서 신사까지 1.8킬로미터에 걸친 와카미야 오지(若宮大路)라는 참배 길이 곧게 뻗어 있고, 길 중앙에는 단카즈라(段葛)라는 벚꽃 가로수 길이 이어집니다. 요리토모가 아들의 순산을 빌며 신하들에게 돌을 손으로 나르게 해서 쌓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800년 전 사람들이 이 돌 하나하나를 날랐겠구나 싶어 감탄했습니다.
겐초지(建長寺)는 가마쿠라 고잔(鎌倉五山), 즉 가마쿠라 5대 선종 사찰의 서열 1위입니다. 고잔이란 남송의 제도를 모방하여 막부가 공식 지정한 다섯 선종 사찰의 위계 체계를 말합니다. 엔가쿠지(円覚寺), 주후쿠지(寿福寺), 조치지(浄智寺), 조묘지(浄妙寺)가 나머지 넷이고, 이 사찰들이 모두 기타카마쿠라 일대에 몰려 있습니다. 하루에 다 돌기는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겐초지와 엔가쿠지 두 곳만 제대로 보는 데도 반나절은 필요합니다.
젠자라이 벤자이텐 신사(銭洗弁財天)도 빠뜨리기 아까운 곳입니다. 동굴 안 샘물에 동전을 씻으면 돈이 불어난다는 속설로 유명한데, 저는 솔직히 그 스토리보다 바위산을 뚫고 들어가는 입구 자체가 더 인상적입니다.
도쿄에서 가마쿠라, 이렇게 짜면 후회가 없습니다
가마쿠라 여행에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도쿄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하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합니다. 도쿄역에서 요코스카선(横須賀線) 직통을 타면 약 55분, 신주쿠에서 쇼난신주쿠라인(湘南新宿ライン)으로도 약 1시간이면 가마쿠라역에 내립니다.
다만 당일치기보다 기타카마쿠라역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는 루트를 추천합니다. 기타카마쿠라(北鎌倉)는 엄밀히 말하면 가마쿠라의 7개 입구 밖에 위치한 지역으로, 역사적으로는 막부 시대 도시의 북쪽 경계였습니다. 이곳에서 엔가쿠지→겐초지→쓰루가오카 하치만구→고마치 거리(小町通り)→가마쿠라 대불 순으로 남쪽으로 흘러내려오면 동선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8월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유이가하마(由比ガ浜) 해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를 놓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매년 8월 중순 토요일 저녁 한 시간 동안 펼쳐지는 행사인데, 파도 소리와 불꽃이 섞이는 그 분위기는 도심 불꽃놀이와는 전혀 다른 공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여름밤의 정수 같은 느낌입니다.
걷다가 다리가 풀릴 때쯤 고마치 거리에 즐비한 센베이(煎餅) 가게를 찾으시면 됩니다. 간장을 발라 불에 구운 따끈한 센베이 한 장, 이게 생각보다 꽤 큰 회복제 역할을 합니다. 일본 위키피디아 가마쿠라 관광청 공식 자료(출처: Wikipedia - Kamakura)에 따르면 가마쿠라의 주요 축제인 가마쿠라 마쓰리(鎌倉祭り)는 매년 4월 두세 번째 주말을 중심으로 일주일간 진행되며, 9월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레이타이사이(例大祭) 때는 야부사메(流鏑馬), 즉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전통 기마 궁술 시연도 볼 수 있습니다.
가마쿠라는 일본의 '또 다른 수도'였다는 말이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도시 지형을 이해하고,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앞에 서서 와카미야 오지가 바다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걸 보고 나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납득하게 됩니다.
대불 한 장만 찍고 돌아오기엔 이 도시가 품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처음 방문한다면 기타카마쿠라역부터 걷기 시작해 고잔 사찰 한두 곳을 느긋하게 보고, 고마치 거리에서 센베이 하나 집어 들고 유이가하마 해변까지 걸어보시길, 솔직히 그 루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