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화이트샌즈 사진을 봤을 때 저는 합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아닌데 저렇게 새하얄 수 있냐고요. 뉴멕시코 한복판, 미사일 시험장에 완전히 둘러싸인 이 국립공원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석고 사구 지대를 품고 있습니다. 평온과 파괴가 말 그대로 경계선 하나를 두고 공존하는 곳,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을 소개해드립니다.

석고 사구, 이게 왜 특별한가
화이트샌즈의 흰 모래는 일반 석영 모래가 아닙니다. 석고(Gypsum), 즉 황산칼슘 결정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모래입니다. 여기서 석고란, 페름기 시대 얕은 바다가 증발하면서 해저에 가라앉은 광물이 수억 년 후 지각 운동으로 융기해 산을 이루고 다시 빗물에 녹아 분지로 흘러든 것입니다. 석영 모래라면 파도에 씻겨 바다로 나가겠지만, 툴라로사 분지(Tularosa Basin)는 출구가 없는 내륙 분지라 물도 모래도 갇혀 있습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고 나니 화이트샌즈가 왜 지구에서 유일한 곳인지 납득이 됐습니다. 셀레나이트(Selenite)라 불리는 투명한 결정이 루세로 호수(Lake Lucero) 바닥에서 형성되고 바람이 그걸 부수고 동쪽으로 날려 쌓아 올린 결과가 275제곱마일, 약 710㎢의 백색 사구 지대입니다. 셀레나이트란 석고가 결정화된 형태 중 하나로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판상 구조를 가집니다. 크기가 최대 0.9m에 달하는 결정이 호수 바닥을 덮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화이트샌즈가 석영 모래사막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석고는 수용성이라 비가 오면 모래끼리 굳어 단단한 층을 형성합니다. 모래언덕인데 일부 구간은 발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이래서 나옵니다. 높이 최대 60피트(18m)에 달하는 사구가 실시간으로 이동하면서 경관을 바꾸니 매번 방문할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사구 지대 총 면적: 약 710㎢ — 지구 최대 석고 사구
- 석고 모래 총량: 약 45억 톤
- 사구 최대 높이: 약 18m(60피트)
- 사구 아래 모래 깊이: 약 9.1m(30피트)
- 국립공원 보호 구역: 사구 지대의 약 42% — 나머지는 미사일 시험장 내

평온과 파괴가 경계를 나누는 곳
화이트샌즈를 알아가면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생각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사막이 인류 최초 핵실험 장소와 담장 하나를 두고 붙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화이트샌즈 미사일 시험장(White Sands Missile Range)은 1945년 세계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Trinity) 실험이 진행된 곳으로 공원은 지금도 그 시험장에 사방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미사일 시험이 있는 날에는 공원 자체가 최대 3시간 폐쇄됩니다.
이걸 두고 시각이 나뉩니다. 군사 시설과 공존하기 때문에 오히려 개발이 억제되고 생태가 보존됐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오발 미사일이 공원 경계 내에 떨어진 사례가 있고 홀로먼 공군기지(Holloman Air Force Base)의 비행 훈련이 일상적인 소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국립공원으로서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두 입장 모두 이해가 됩니다. 다만 그 긴장감 자체가 화이트샌즈만의 정체성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이 땅은 평온과 충돌이 반복된 곳입니다. 약 23,000~21,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발자국이 이곳 석고 지층에서 발견됐습니다. 광자극 발광 연대 측정법(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 dating, OSL)을 통해 연대가 재확인됐는데, OSL이란 광물 입자가 마지막으로 빛에 노출된 시점을 측정해 매몰 연대를 추정하는 기술입니다. 콜롬비아 매머드, 땅늘보, 다이어 늑대의 발자국도 같은 층에서 나옵니다. 거대한 생명들이 공존하다 사라진 자리에 지금은 흰 모래만 남은 겁니다.
메스칼레로 아파치족(Mescalero Apache)이 이 땅에서 쫓겨난 역사, 스페인 식민지 시대 소금 전쟁, 냉전기의 미사일 개발까지. 화이트샌즈는 표면은 고요하지만 그 아래에는 굉장히 복잡한 서사가 쌓여 있는 곳입니다. 매년 약 60만 명이 방문하는 뉴멕시코 최다 방문 국립공원이라는 사실도 그 이면을 알고 나면 단순한 관광 숫자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야행성 생태, 밤에야 비로소 열리는 세계
화이트샌즈를 낮에만 보는 건 절반만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이 공원의 생태를 들여다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공원에는 800종 이상의 동물이 서식하며 그중 상당수가 야행성입니다. 낮의 여름 최고 기온이 평균 97°F(약 36°C)에 달하고, 기록된 최고치는 111°F(44°C)에 이르니 낮에 활동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환경입니다.
제가 특히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공원 고유종들의 색 적응입니다. 아파치 주머니쥐(Apache Pocket Mouse), 표백귀도마뱀(Bleached Earless Lizard, Holbrookia maculata ruthveni), 흰색 채찍꼬리도마뱀(Aspidoscelis gypsi) 등 상당수 종이 주변 환경에 맞게 흰색이나 미색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를 보호색(Cryptic Coloration) 진화라 하는데, 쉽게 말해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몸 색깔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적어도 45종이 이 공원 고유종으로 분류되며 그중 40종이 나방입니다.
밤이 되면 모래 위에는 낮 동안의 야행성 동물 발자국이 남습니다. 메리엄캥거루쥐(Merriam's Kangaroo Rat)가 뛰어간 흔적, 코요테가 지나간 발자국, 전갈이 기어간 자국까지. 이 발자국들을 읽는 것 자체가 트래킹의 묘미라고 하더군요. 제가 직접 새벽 사구에 서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꽤 자주 상상하게 됩니다. 공원 측은 4월부터 10월 사이 보름달 전날 밤에 가이드 하이킹을 운영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두고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생태 관찰 수업"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이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낮에는 사구에서 썰매를 타고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로 붐비지만 해가 넘어가면 그 풍경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빛이 낮게 깔리면서 사구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사진을 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다만 그 흰 모래의 반사광은 생각보다 강렬하니 낮 시간대 방문이라면 선글라스는 필수입니다.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을 알면 알수록, 단순히 "예쁜 하얀 사막"이라는 첫인상이 점점 얄팍하게 느껴졌습니다. 2만 년 전 인류의 발자국이 석고 지층에 박혀 있고, 그 위를 지금은 고유 진화종 동물들이 밤마다 누비고, 울타리 너머에서는 미사일 시험이 진행됩니다. 이 모든 게 한 장소에 겹쳐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가장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빛이 모래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각도, 새벽 사구에 남은 발자국의 질감, 그리고 군사 구역과 경계를 맞댄 그 묘한 긴장감은 직접 서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일 겁니다. 관심이 생겼다면 보름달 가이드 하이킹 일정을 먼저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낮의 화이트샌즈와 밤의 화이트샌즈는 완전히 다른 장소라고 하니까요.